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Heads of an Indictment laid by J.-J.Rousseau against David Hume (1766-1767)

Summary of the quarrel between Rousseau and Hume in the St James's Chronicle

c. 15 January 1767

This is an excerpt

Thursday, January 15, 1767.

It must be a Matter of Concern to all true Lovers of 'Sound Philosophy,' to hear that the unhappy Quarrel between David Hume, Esq; and Mr. Rousseau, is never likely to be made up, as the latter hath actually commenced a Suit against the former, in one of our Courts of Justice. Very fortunately, by an Acquaintance with a Clerk of the Court, I have it in my Power to oblige the Reader with the Heads of the Indictment laid by the Author of Emilius against our celebrated Historian. I am assured by my Friend, whose Veracity I never yet found any Reason to doubt, that the following is Copia Vera.

Heads of an Indictment laid by J.J.R. Philosopher, against D.H. Esq;

I That the said David H. to the great Scandal of Philosophy, and not having the Fitness of Things before his Eyes, did concert a Plan with Mess. Tronchin, Voltaire, and D'Alembert, to ruin the said J.J.R. for ever, by bringing him over to England, and there settling him to his Heart's Content.

II That the said David H. did, with a malicious and traitorous Intent, procure, or cause to be procured, by himself, or somebody else, one Pension of the yearly Value of 100£. or thereabouts, to be paid to the said J.J.R. on Account of his being a Philosopher, either privately or publickly, as to him the said J.J.R. should seem meet.

III That the said David H. did, one Night, after he left Paris, put the said J.J.R. in bodily Fear, by talking in his Sleep; although the said J.J.R. doth not know whether the said David H. were really asleep, or whether he shammed Abraham1, or what he meant.

IV That, at another Time, as they, the said David H. and the said J.J.R. were sitting opposite each other by the Fire Side in London, he, the said David Hume, did look at him, the said J.J.R. in a Manner of which it is difficult to give any Idea. That he the said J.J.R. to get rid of the Embarrassment he was under, endeavoured to look full at him the said David H. in return, to try if he could not stare him out of Countenance: but in fixing his Eyes against his, the said David H. he felt the most inexpressible Terror, and was obliged to turn them away. Insomuch that the said J.J.R. doth in his Heart think and believe, as much as he believes any Thing, that he the said David H. is a certain Composition of a White-Witch and a Rattle-Snake.

V That the said David H. on the same Evening, after politely returning the Embraces of him the said J.J.R. and gently tapping him on the Back, did repeat several Times, in a good natured easy Tone, the Words — Why, what, my dear Sir! Nay, my dear Sir! Oh, my dear Sir! From whence the said J.J.R. doth conclude, as he thinks, upon solid and sufficient Grounds, that he the said David H. is a Traitor. Albeit he, the said J.J.R. doth acknowledge, that the Physiognomy of the good David is that of an honest Man, all but those terrible Eyes of his, which he must have borrowed; but he the said J.J.R. vows to God he cannot conceive from whom, or what.

VI That the said D.H. hath more Inquisitiveness about him than becometh a Philosopher; and did never let slip an Opportunity of being alone with the Governante of him the said J.J.R.

VII That the said David H. did most atrociously and flagitiously put him the said John James Rousseau, Philosopher, into a Passion; as knowing, that then he would be guilty of a Number of Absurdities.

VIII That the said David H. must have published Mr Walpole's Letter in the St. James's Chronicle; because, at that Time, there was neither Man, Woman, nor Child, in the Island of Great Britain, but the said David H. the said J.J.R. and Mr. Henry Baldwin, the Editor of The St. James's Chronicle aforesaid.

IX That somebody in a certain Magazine, and somebody else in a certain Newspaper, said something against him, the said J.J.R. which he the said J.J.R. is persuaded for the Reason abovementioned could be no body but the said D.H.

X That the said J.J.R. knows that he the said D.H. did open and peruse Letters of him the said J.J.R. because he one Day saw the said D.H. go out of the Room after his own Servant, who had, at that very Time, a Letter of the said J.J.R's in his Hands; which must have been in order to take it from the Servant, open it, and read the Contents.

XI That the said David H. did, at the Instigation of the Devil, in a most wicked and unnatural Manner, send, or cause to be sent to the Lodgings of him, the said J.J.R. one Dish of Beef-Steaks; thereby meaning to insinuate, that he the said J.J.R. was a Beggar, and came over to England to ask Alms; whereas be it known to all Men by these Presents, that he the said J.J.R. brought with him the Means of Subsistence, and did not come with an empty Purse; as he doubts not but he can live upon his Labours — with the Assistance of his Friends; and, in short, can do better without the said D.H. than with him.

XII That, besides all these Facts put together, the said J.J.R. did not like certain Appearances of Things on the Whole.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프랑스혁명이 부르주아혁명이었는가를 둘러싼 20세기의 역사학계 논쟁에 대한 필립 미나르(Philippe Minard)의 논평

프랑스혁명 은 부르주아혁명 이 아니었는가? - 역사서술의 유산 - 라브루스(Ernest Labrousse)는 1953년 글에서 혁명이 일어나기 두 세대 전부터 부르주아의 대두가 다시 시작됐는데, 수가 증가하고 더욱 큰 부와 능력을 갖게 되었지만 성실하고 근검절약하고 가족을 아끼는 탄탄한 덕성은 전혀 잃지 않았다고 썼다. 두 가지 문제가 제기됐는데, 하나는 ‘권력 재분배’였고 다른 하나는 ‘경제 자유화’였다. “더 부유해지고 수도 늘어나고 더욱 훌륭하게 교육받은 데다 도시에 모여 살며 밀접하게 접촉했던 부르주아가, 가장 대의제적이었던 환경에서, 어떻게 계급으로서의 자의식을 갖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이 자의식은 귀족과 투쟁하면서 더 확고해졌다. 그러나 부르주아의 장애물은 커져만 갔으니......” 그래서 라브루스는 최종적으로 1788년의 부르주아는 사회적으로 억압된 계급이라고 진단했다. 이와 같은 해석 도식은 1930년대 르페브르(Georges Lefebvre)나 1965~66년의 (‘젊은’) 퓌레와 리셰(F. Furet & D. Richet)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다. 한마디로 프랑스대혁명은 나눌 수 없는 쌍으로 인식되는 ‘부르주아의 대두’와 ‘자본주의의 출현’의 거대서사에 오래전부터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그 후 1970~80년대에 격론이 일었는데, ‘사회사’는 이로부터 얻은 것이 전혀 없다. 소위 ‘마르크스주의적’ 또는 심지어 ‘자코뱅주의적’이라고 불리는 ‘정통해석’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혁명이 부르주아지에 의해 일어났고 부르주아지를 위해 운용됐다는 관념은 혁명이 일어난 직후부터 바르나브(Barnave)에게서 발견되며, 이후 토크빌, 미녜, 기조, 티에리, 텐에까지 이어졌다. 마르크스도 ‘구체제의 폐허 위에 건설된 부르주아적ㆍ자본주의적 프랑스’라는 관념을 왕정복고시대의 자유주의 역사가들에게서 가져왔다. 만일 ‘정통해석’이란 게 있었다고 한다면, 거기에는 많은 역사가들이 참여하고 있었다. 이는 모라제(Charles Morazé

유럽 문서고 탐방 #1 - 프랑스 이제르 도립사고 + 국립사고(Archives nationales de France) - 김대보

유럽 문서고 탐방 #1 프랑스 이제르 도립사고 + 국립사고(Archives nationales de France) 김대보 파리1대학에 입학하기 전, 그르노블이라는 프랑스 동남부의 도시에서 어학연수를 했다. 그곳에서 무심코 찾아간 한 공공기관은 나에게 색다른 경험을 안겨주었다. 그 기관은 이제르 도립 문서보관소(Les Archives départementales de l’Isère)였다. 그곳은 분명 이제르 도 행정 혹은 국가 행정과 관련된 문서가 보관되어 있는 공공기관이었지만, 어학연수를 받으면서 일주일에 두 번, 혹은 세 번 정도 가면서 느낀 것은 문서보관소라는 곳이 도서관 같다는 점이었다. 한국에서는 국가기록원을 비롯하여 공공기관의 문서를 보관하고 있는 곳에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기록물 보관소, 혹은 문서보관소라고 불리는 기관의 이미지는 이 때 모두 생겼다.  파리1대학에 입학한 후, ‘역사학도라면 응당 문서보관소에서 살아야 한다’는 막연한 관념만 가지고 파리에 있는 국립 문서보관소(한국의 국가기록원에 해당)에 무작정 찾아갔다. 그르노블에서 프랑스의 문서보관소를 살짝 느껴봤기 때문에 ‘별거 있겠어?’라고 생각했고,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무모하게 찾아간 셈이다. 어디에 어떤 자료가 있는지, 문서를 어떻게 신청하는지, 등록은 어디서 하는지, 나한테 필요한 자료가 무엇인지 등 정말 중요한 정보들을 하나도 모른 채 시쳇말로 ‘맨땅에 헤딩’하듯이 찾아간 것이다.  프랑스 국립 문서보관소에 처음 등록을 한 것은 파리1대학의 정식 학생증이 나온 직후인 2011년 1월이었다. 인터넷에서 ‘Les Archives nationales’이라고 검색하고, 모든 항목을 다 뒤져서 간신히 가등록(préinscription)을 했다. 물론 이 때 두 상자를 예약할 수 있었는데, 지금까지 이 두 상자를 참고할 일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Archives, 즉 복수형으로 써야 하는지도 모를 정도였으니 정말 말 다 했다. 이렇게 가등록

<선을 넘는 녀석들(TV/설민석)>이 말하는 ‘프랑스혁명사’

<선을 넘는 녀석들>이 말하는 ‘프랑스혁명사’  김대보  한국교원대  “왕과 귀족은 평민이 낸 세금으로 호의호식하고 있었다. 불만에 가득찬 평민대표들은 그들의 목소리를 모을 국민의회를 결성했고, 성난 시민들은 왕권유지를 위한 공포정치의 상징이었던 바스티유를 습격했다.1) 그리고 이 습격사건은 최초의 민주화 혁명인 프랑스 대혁명의 도화선이 되었고, 바로 이곳에서 전 세계 민주화가 시작되었다. 또한 바스티유에 수감되어있던 죄수들은 그곳에 정치범들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민중들에 의해 영웅이 되었다. 바스티유 습격 4년 후, 절대권력이던 루이 16세는 시민들 손에 이끌려 단두대로 향하게 된다. 콩코르드 광장에서 루이 16세를 처형하면서 프랑스 대혁명은 완성된다. 로베스피에르는 혁명이 유죄가 되기 전에 왕을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일각에서는 로베스피에르가 과거의 치욕을 복수했다는 주장이 있다. 이 치욕은 루이르그랑 고등학교(Lycée Louis Le Grand)를 지나가던 루이 16세 앞에서 학생 대표였던 로베스피에르가 무릎을 꿇고 시를 읊었지만, 루이 16세가 시큰둥하게 지나간 사건이었다. 그리고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소통하지 않은 왕의 말로가 비참했다. 이제 민중들이 하나가 되어 절대권력을 무너뜨렸다. 국민에 의한 국민공회가 만들어졌고, 3인방(마라, 당통, 로베스피에르)이 주도했다. 민중들은 혁명이 오면 신세계가 올 줄 알았는데, 이 세 사람이 독재를 시작했다. 여기서 마라는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다. “몇 달 안에 십만 명만 죽이게 해주면 내가 세상을 바꾸겠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마라를 죽인 사람이 코르데인데, 심문 과정에서 10만 명을 구하기 위해 한 사람을 죽였다고 답했다. 코르데는 공포정에 맞섰던 암살천사였다. 당시 사람들이 코르데의 미모를 보고 반해서 이렇게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마라의 죽음을 보고 깜짝 놀란 로베스피에르가 자신도 암살당할 수도 있다면서 더 무섭게 독재를 했다. 그리고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