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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017의 게시물 표시

1778년 파리, 볼테르와 프랭클린의 만남

볼테르는 1778년에 드디어(!) 참으로 오랜만에 파리에 갔다. 그가 파리에 도착했다는 소문이 돌자 방문객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도착한지 1주도 되지 않아 프랭클린이 손자를 데리고 볼테르를 방문했다. 프랭클린이 볼테르에게 손자를 축복해달라고 부탁했다. 콩도르세, 트롱섕, 빌레트, 바녜르 등 많은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 84세 노인은 프랭클린의 8살 난 손자의 머리에 손을 얹고 (능숙한) 영어로 "신과 자유"라고 축복했다. "아가, 신과 자유, 이 두 단어를 기억하거라." 훗날 콩도르세는 이것이야말로 프랭클린의 손자에게 어울리는 유일한 축복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얼마 후 과학 학술원에 들른 볼테르는 거기서 또 프랭클린과 마주치는데, 현장에 있었던 존 애덤스의 증언에 따르면 그곳의 과학자들이 볼테르와 프랭클린의 악수에 만족하지 않고 "프렌치 키스"를 할 때까지 광분 상태에 빠져있었다고 한다. 에피네 부인의 증언도 흥미롭다: 왕족이 나타나도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가운데, 볼테르가 재채기를 하고 프랭클린이 "God bless you"라고 반응하면 사람들이 다시금 열광했다는 것이다.

약하게 태어나 천수를 누린 볼테르

볼테르(François-Marie Arouet / Voltaire)는 너무 작고 연약하게 태어나서 세례를 받으러 성당까지 가지도 못하고 집에서 성사를 치렀다. 한동안 집에 간호사가 상주하며 매 시간마다 산모에게 아기가 곧 죽을 것이라고 알렸다. 그러나 그는 84세까지 천수를 누리며 길이 이름을 남겼다.

Against some big books on the history of democracy out there

[.....] Le romantisme a opéré rétroactivement sur le classicisme, comme le dessin de l'artiste sur ce nuage. Rétroactivement il a créé sa propre préfiguration dans le passé, et une explication de lui-même par ses antécédents. C'est dire qu'il faut un hasard heureux, une chance exceptionnelle, pour que nous notions justement, dans la réalité présente, ce qui aura le plus d'intérêt pour l'historien à venir. Quand cet historien considérera notre présent à nous, il y cherchera surtout l'explication de son présent à lui, et plus particulièrement de ce que son présent contiendra de nouveauté. Cette nouveauté, nous ne pouvons en avoir aucune idée aujourd'hui, si ce doit être une création. Comment donc nous réglerions-nous aujourd'hui sur elle pour choisir parmi les faits ceux qu'il faut enregistrer, ou plutôt pour fabriquer des faits en découpant selon cette indication la réalité présente ? Le fait capital des temps modernes est l'avènement de la démo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