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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017의 게시물 표시

마녀사냥과 인간의 사고방식

인간은 해결책이 있는 편을 선호한다.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세계를 왜곡하고, 그 논리에 따라 행동하면서 자기 위안을 찾는 것이다. 이를테면 16~17세기 기독교의 입장에 따르면, 인간이 악귀에 홀리면 그것은 (1) 사탄에 의해 직접 악령이 깃든 것이거나 (2) 무당(witch)의 주술(maleficium)에 의해 악령이 깃든 것이다.


그런데 악령이 깃들었다고 보고된 거의 모든 사건들에서 관련 당사자들과 당국은 언제나 무당/마녀를 찾아 헤맸지 사탄의 직접적 행위로 몰고가지 않았다. 무당/마녀가 사탄과 계약을 맺고 (또는 암묵적으로 힘을 빌려서) 주술을 걸었다면 그 무당을 재판하고 죽이면 해결/응징이 가능하지만 사탄이 직접 악령을 보낸 것이라면 인간이 대체 뭘 어찌 하겠는가. 기도하는 수밖에.

기도만 하고 있기엔 답답했던 거다. 그래서 온통 무당/마녀로 몰아 죽인 것이지. 예나 지금이나 지진이 일어나면 멀쩡한 사람들을 죄인으로 만들어서 신의 분노라고 하기도 하고.

1778년 파리, 볼테르와 프랭클린의 만남

볼테르는 1778년에 드디어(!) 참으로 오랜만에 파리에 갔다. 그가 파리에 도착했다는 소문이 돌자 방문객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도착한지 1주도 되지 않아 프랭클린이 손자를 데리고 볼테르를 방문했다. 프랭클린이 볼테르에게 손자를 축복해달라고 부탁했다. 콩도르세, 트롱섕, 빌레트, 바녜르 등 많은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 84세 노인은 프랭클린의 8살 난 손자의 머리에 손을 얹고 (능숙한) 영어로 "신과 자유"라고 축복했다. "아가, 신과 자유, 이 두 단어를 기억하거라." 훗날 콩도르세는 이것이야말로 프랭클린의 손자에게 어울리는 유일한 축복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얼마 후 과학 학술원에 들른 볼테르는 거기서 또 프랭클린과 마주치는데, 현장에 있었던 존 애덤스의 증언에 따르면 그곳의 과학자들이 볼테르와 프랭클린의 악수에 만족하지 않고 "프렌치 키스"를 할 때까지 광분 상태에 빠져있었다고 한다. 에피네 부인의 증언도 흥미롭다: 왕족이 나타나도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가운데, 볼테르가 재채기를 하고 프랭클린이 "God bless you"라고 반응하면 사람들이 다시금 열광했다는 것이다.

지금 와서 알아봤자 별 쓸모없는 18세기 프랑스 지식인들의 문명사 논쟁

프리드리히 대왕의 프로이센 궁정에 있던 코르넬리우스 데 파우(Cornelius Franciscus de Pauw)는 1770년에 인류 “문명”이 중국이 아닌 이집트에서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볼테르(François Marie Arouet, “Voltaire”)는 1776년에 데 파우를 직접 거명하며 문명은 중국도 이집트도 아닌 인도에서 시작되었는데, 그것이 먼저 중국에 전파된 다음에 이집트와 이스라엘로 전파되었다고 주장했다. 훗날 혁명기 파리 최초의 시장(1789년 7월부터 1791년 11월까지)이 될 운명이었던 천문학자 바이이(Jean Sylvain Bailly)는 볼테르를 “이 세기의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 칭송했으나 이 문제에서만큼은 의견을 달리 해서, 인도인들 이전에 이미 인류 문명이 존재했다고 주장했다.

약하게 태어나 천수를 누린 볼테르

볼테르(François-Marie Arouet / Voltaire)는 너무 작고 연약하게 태어나서 세례를 받으러 성당까지 가지도 못하고 집에서 성사를 치렀다. 한동안 집에 간호사가 상주하며 매 시간마다 산모에게 아기가 곧 죽을 것이라고 알렸다. 그러나 그는 84세까지 천수를 누리며 길이 이름을 남겼다.

지식인과 정치적 격변 : 지롱드파, 산악파, 프랑스혁명

정치적 격변의 상황에서 가장 한심한 것은 지롱드파/브리소파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다 (브리소, 콩도르세, 베르니요, 귀아데, 롤랑, 올랭프 드 구즈, 뷔조, 루베 등). 이들은 자신들이 오래 전부터 자유라는 대의를 위해 싸워왔으므로 민중이 자기들을 치켜세우고 알아보고 인정해주고 존경해줘야 한다고 내심 믿고 기대한다. 이들은 진보언론 대부분을 쥐고 있으며 (1791~1793년 지롱드파는 대부분 언론인 또는 지식인 출신임), 로베스피에르가 민중의 인기를 얻는 것을 보고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는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의 잘난 머리로 온갖 비전을 내세우지만, 진정 사람 사는 모습을 깊이 알지 못하고 인간의 욕망과 고통에 무지하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들의 예측이 번번이 빗나갈 때마다 민중의 무지와 야만성을 탓하고 로베스피에르를 탓한다.



지롱드파가 자신을 국회에서 제명하려 하자, 로베스피에르가 말했다. "시민들이여, 여러분은 혁명 없는 혁명을 바랐습니까? .... 수도의 민중은 전 지역의 국민들을 대신해 행동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민중의 행동 일체를 한꺼번에 승인하거나 비난해야 합니다. 이런 큰 (정치적/감정적) 격변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몇 가지 옳지 못한 행동들을 범죄로서 처벌하면 우리는 결국 열정적으로 헌신했다는 이유로 민중을 단죄하는 셈이 됩니다...." (1792년 11월 5일)

한 평생 책만 읽고 직업상 옳은 말만 하도록 훈련받은 사람이 지롱드파/브리소파가 되지 않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단 훨씬 쉽지만,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로베스피에르는 민중이 항상 옳으니까 그들을 옹호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민중은 본질적으로 선하고, 그 선함이 부패한 정치와 엘리트 통치에 대한 분노로 오염되어 있을 때, 그 분노의 폭발을 뻔한 도덕률로 비난하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 번번이 지적했을 뿐이다. 정작 학살과 전쟁에 책임이 있는 지롱드파/브리소파(전쟁 개시 책임, 민중의 파리 감옥 학살 발생시 내무부장관직과 파리시장직 모두 장악)…

Against some big books on the history of democracy out there

[.....] Le romantisme a opéré rétroactivement sur le classicisme, comme le dessin de l'artiste sur ce nuage. Rétroactivement il a créé sa propre préfiguration dans le passé, et une explication de lui-même par ses antécédents. C'est dire qu'il faut un hasard heureux, une chance exceptionnelle, pour que nous notions justement, dans la réalité présente, ce qui aura le plus d'intérêt pour l'historien à venir. Quand cet historien considérera notre présent à nous, il y cherchera surtout l'explication de son présent à lui, et plus particulièrement de ce que son présent contiendra de nouveauté. Cette nouveauté, nous ne pouvons en avoir aucune idée aujourd'hui, si ce doit être une création. Comment donc nous réglerions-nous aujourd'hui sur elle pour choisir parmi les faits ceux qu'il faut enregistrer, ou plutôt pour fabriquer des faits en découpant selon cette indication la réalité présente ? Le fait capital des temps modernes est l'avènement de la démo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