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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inst some big books on the history of democracy out there

[.....] Le romantisme a opéré rétroactivement sur le classicisme, comme le dessin de l'artiste sur ce nuage. Rétroactivement il a créé sa propre préfiguration dans le passé, et une explication de lui-même par ses antécédents. C'est dire qu'il faut un hasard heureux, une chance exceptionnelle, pour que nous notions justement, dans la réalité présente, ce qui aura le plus d'intérêt pour l'historien à venir. Quand cet historien considérera notre présent à nous, il y cherchera surtout l'explication de son présent à lui, et plus particulièrement de ce que son présent contiendra de nouveauté. Cette nouveauté, nous ne pouvons en avoir aucune idée aujourd'hui, si ce doit être une création. Comment donc nous réglerions-nous aujourd'hui sur elle pour choisir parmi les faits ceux qu'il faut enregistrer, ou plutôt pour fabriquer des faits en découpant selon cette indication la réalité présente ? Le fait capital des temps modernes est l'avènement de la démocratie. Que dans le passé, tel qu'il fut décrit par les contemporains, nous en trouvions des signes avant-coureurs, c'est incontestable ; mais les indications peut-être les plus intéressantes n'auraient été notées par eux que s'ils avaient su que l'humanité marchait dans cette direction ; or cette direction de trajet n'était pas plus marquée alors qu'une autre, ou plutôt elle n'existait pas encore, ayant été créée par le trajet lui-même, je veux dire par le mouvement en avant des hommes qui ont progressivement conçu et réalisé la démocratie. Les signes avant-coureurs ne sont donc à nos yeux des signes que parce que nous connaissons maintenant la course, parce que la course a été effectuée. Ni la course, ni sa direction, ni par conséquent son terme n'étaient donnés quand ces faits se produisaient : donc ces faits n'étaient pas encore des signes. Allons plus loin. Nous disions que les faits les plus importants à cet égard ont pu être négligés par les contemporains. Mais la vérité est que la plupart de ces faits n'existaient pas encore à cette époque comme faits ; ils existeraient rétrospectivement pour nous si nous pouvions maintenant ressusciter intégralement l'époque, et promener sur le bloc indivisé de la réalité d'alors le faisceau de lumière à forme toute particulière que nous appelons l'idée démocratique. [.....] 

- Henri Bergson, La pensée et le mouvant : essais et confé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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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iel Bensaïd, <혁명들: 위대하고 정지해있고 침묵하는> 요약-번역

<혁명들: 위대하고 정지해있고 침묵하는> 요약-번역 다니엘 벵사이드
Daniel Bensaïd, "Revolutions: Great and Still and Silent," in Mike Haynes & Jim Wolfreys (eds.), History and Revolution: Refuting Revisionism (London: Verso, 2007)

< I >
<노선(Lignes)>誌는 2001년 2월호에서 ‘혁명의 욕망’이라는 주제의 특집을 구성했다(참여 저자: Étienne Balibar, Jean Baudrillard, Daniel Bensaïd, Sylvain Lazarus, Michael Löwy, Edgar Morin, Jean-Luc Nancy, Enzo Traverso, Paul Virilio 등). 혁명의 욕망인가, 필요인가? 이는 생기 넘치는 욕망 같지만, 사실은 무덤의 헌화 같은 씁쓸한 향내를 풍기고 있다. 초창기의 추진력과 열정이 쇠진한 잔여물이 바로 욕망과 갈망이다.

필요로부터 해방된 욕망은 궁극적으로는 소비주의적 판본에 불과하다. 욕망 기제는 무엇보다도 소비 기제인 것이다. 필요를 욕망으로 대체하는 것은 이론적 역사를 갖고 있다. 레옹 왈라스는 노동가치론을 한계효용가치론으로 대체하면서 객관적 가치를 주관적 가치로 대체했고, 샤를 지드는 ‘욕망치(desirability: 얼마나 바랄만한가, 얼마나 바람직한가)’라는 용어를 도입함으로써 ‘효용(utility)’이라는 용어가 풍기는 객관성의 냄새를 제거했다. 푸코는 1970년대 말에 혁명이 아직도 바랄만한 것인지(still desirable) 질문함으로써 의식적으로건 무의식적으로건 이 전통을 이어받았다.

< II >
얀 파토치카는 바로 혁명이라는 관념 자체에서 ‘근대성의 근본적 특징’을 본다. 샤토브리앙의 ‘혁명들’은 한나 아렌트에서 단수형 ‘혁명’이 되었는데, 이것은 시대의 새로운 의미론에 각인되었다. 즉 이제 과거…

제프 일리, <무엇이 민주주의를 만드는가? 20세기 유럽의 혁명적 위기들, 민중정치, 그리고 민주적 성취> 요약-번역

무엇이 민주주의를 만드는가? 20세기 유럽의 혁명적 위기들, 민중정치, 그리고 민주적 성취 (요약-번역)제프 일리
Geoff Eley, “What Produces Democracy? Revolutionary Crises, Popular Politics and Democratic Gains in 20th-Century Europe,” in Mike Haynes & Jim Wolfreys (eds.), History and Revolution: Refuting Revisionism (London: Verso, 2007)


<공산주의 이후에 민주주의 개념화하기>

1989년 일련의 동유럽 혁명과 1991년 소련 해체가 가져온 냉전의 종식은 불가역적이고 기념비적인 전진으로 여겨졌지만, 그 주된 의미를 민중참여와 민주주의의 관점보다 경제적 관점에서 평가하는 경향이 짙었다. 즉 시장이 이행의 주된 척도를 제공한 것이다.

1989년 이후 정치의 공적 언어에서는 허용되는 주장과 신념의 범위가 크게 좁혀졌다. 소련식 계획경제의 붕괴는 케인즈주의로부터의 황급한 후퇴와 탈규제 추세를 강화시켰고, 공공재에 대한 경시를 부추겼다.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을 상상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회주의에 대한 일체의 옹호를 배척하는 방향으로의 이행이 이루어졌다. 사회주의 진영의 현실적인 경제적 강령이 고갈된 상황에서, 자유시장에 기초한 자본주의적 경제모형은 확고한 주도권을 행사했고, 각종 조치와 협정을 통해 오늘날 세계화라 부르는 추세가 강화됐다.

현재의 담론에서는 민주화보다 시장이, 그리고 인간 행위자들의 집단적 작용보다는 시장세력의 승리가 변화의 원동력이자 진보에 필요한 역동성을 제공하는 힘이며 사태를 정당화하는 논변의 원천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시장의 힘은 각국 정부가 추구할 수 있는 정책의 범위에, 특히 예전 민주주의 기획의 케인즈주의적이고 복지국가적인 성향에 제약을 부과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마르크스주의는 힘을 크게 상실했지만, 한편 시장원칙의 거의 …

프랑스혁명이 부르주아혁명이었는가를 둘러싼 20세기의 역사학계 논쟁에 대한 필립 미나르(Philippe Minard)의 논평

프랑스혁명부르주아혁명이 아니었는가? - 역사서술의 유산 -

라브루스(Ernest Labrousse)는 1953년 글에서 혁명이 일어나기 두 세대 전부터 부르주아의 대두가 다시 시작됐는데, 수가 증가하고 더욱 큰 부와 능력을 갖게 되었지만 성실하고 근검절약하고 가족을 아끼는 탄탄한 덕성은 전혀 잃지 않았다고 썼다. 두 가지 문제가 제기됐는데, 하나는 ‘권력 재분배’였고 다른 하나는 ‘경제 자유화’였다. “더 부유해지고 수도 늘어나고 더욱 훌륭하게 교육받은 데다 도시에 모여 살며 밀접하게 접촉했던 부르주아가, 가장 대의제적이었던 환경에서, 어떻게 계급으로서의 자의식을 갖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이 자의식은 귀족과 투쟁하면서 더 확고해졌다. 그러나 부르주아의 장애물은 커져만 갔으니......” 그래서 라브루스는 최종적으로 1788년의 부르주아는 사회적으로 억압된 계급이라고 진단했다.

이와 같은 해석 도식은 1930년대 르페브르(Georges Lefebvre)나 1965~66년의 (‘젊은’) 퓌레와 리셰(F. Furet & D. Richet)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다. 한마디로 프랑스대혁명은 나눌 수 없는 쌍으로 인식되는 ‘부르주아의 대두’와 ‘자본주의의 출현’의 거대서사에 오래전부터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그 후 1970~80년대에 격론이 일었는데, ‘사회사’는 이로부터 얻은 것이 전혀 없다.

소위 ‘마르크스주의적’ 또는 심지어 ‘자코뱅주의적’이라고 불리는 ‘정통해석’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혁명이 부르주아지에 의해 일어났고 부르주아지를 위해 운용됐다는 관념은 혁명이 일어난 직후부터 바르나브(Barnave)에게서 발견되며, 이후 토크빌, 미녜, 기조, 티에리, 텐에까지 이어졌다. 마르크스도 ‘구체제의 폐허 위에 건설된 부르주아적ㆍ자본주의적 프랑스’라는 관념을 왕정복고시대의 자유주의 역사가들에게서 가져왔다. 만일 ‘정통해석’이란 게 있었다고 한다면, 거기에는 많은 역사가들이 참여하고 있었다. 이는 모라제(Charles Morazé)의 1957년 글과 퐁테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