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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017의 게시물 표시

사르트르, 카뮈, 아버지 없음에 대하여

장-폴 사르트르의 모친은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슈바이처 박사의 사촌인 안-마리 슈바이처였고, 부친은 프랑스 해군 장교 장-바티스트 사르트르였다. 장-폴 사르트르는 1905년 6월 21일에 파리에서 태어났는데, 그가 태어났을 때 그의 아버지 장-바티스트는 해외에 주둔중이었고, 귀국하지 못한 채 2년 뒤 병으로 사망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30세였다. 사르트르는 훗날 이를 두고 자전소설 "말"에서 아버지가 일찍 죽은 것은 잘 한 일이었다고 평했다. 자신에게 초자아를 부과할 기회를 얻기 전에 죽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사르트르는 행복했을까.


알베르 카뮈도 아버지를 보지 못했다. 카뮈는 1913년 11월 7일 프랑스령 알제리아의 몽도비(지금은 드레앙)에서 태어났다. 모친은 스페인 핏줄이었고 문맹이었다. 부친은 알자스 집안의 가난한 농촌노동자였다. 부친은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마자 마른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1914년 10월 11일에 부상병동에서 사망했다. 카뮈의 극도로 가난한 유년기는 그의 미완성 자전소설 "최초의 인간"에 잘 그려져 있다. 카뮈는 "아버지 없음"에 대해 몹시 민감했고, 그것을 극복해야 할 벽이자 자신의 자산으로 삼았다.

카뮈는 행복했을까.

사르트르와 카뮈는 어떤 이들에게는 든든하고 존경하고 사랑하는 아버지가 있다는 것을 과연 이해할 수 있었을까.

바이다의 영화 <당통>

바이다(Andrzej Wajda)의 영화 <당통(Danton)>은 1) 로베스피에르를 부정적 인물로 재현하고 당통에게 과도하게 호의적이라는 이유로, 2) 그리고 폴란드의 바웬사를 당통에 대입했다는 이유로 개봉 당시 프랑스 진보지식인들의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진보주의적 혁명사가 중 대가이자 대인배인 피에르 세르나(Pierre Serna)는 이 영화가 로베스피에르를 재현한 방식을 비교적 호의적으로 평가했다 :

“아무도 동의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말한 바 없지만, 바이다의 영화에서도 나는 같은 인상을 받았다. 바이다의 로베스피에르는 광인이 아니며 환각에 사로잡혀 있지도 않다. 그는 의연하다. 그는 만인의 행복을 바란다고 믿으며, 인민을 보호하고 인민의 이름으로 행동한다. 그는 폭력의 해악을 명철하게 자각하고 있다. 또 그는 폭력이 폭발할 때 그것을 한 곳으로 모으려 한다. 물론 영화에서 피비린내 나는 인물을 찾으려는 사람들은 그런 인물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비록 마티에類의 공감을 갖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최소한의 선의를 갖고 작품을 감상한다면 통치의 역사에서 독특하고 전적으로 새로운 상황에 맞닥뜨린 한 정치인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 공안위원회 집무실에서 우리의 근대성이 태어난 것이다. 작품은 학문적 작업에 독특한 보조제의 역할을 한다. 작품을 그 자체로 환영해야만 한다.”


메모 : 루소는 홉스의 어떤 글을 읽었던가?

루소가 홉스의 글에 대해 진지하게 대응한 내용은 주로 <인간불평등기원론(Discours sur l'origine et les fondements de l'inégalité parmi les hommes, 1755)>에 담겨 있다.

그런데 루소가 홉스의 저서 중 <시민론(De cive, 1642)> 외에 다른 글을 읽었다는 증거는 현재까지 나타나지 않았으며, 루소가 홉스의 <리바이어던(Leviathan, 1651)>을 읽었으리라고 추정할 만한 근거는 없다.

출처 : Robin Douglass, Rousseau and Hobbes: Nature, Free Will, and the Passions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5), p. 191.


퍼거슨(Adam Ferguson)의 정치사상

에든버러대학 도덕철학 교수였던 아담 퍼거슨(Adam Ferguson)이 한국에서 마치 18세기 공화주의의 화신인 것처럼 언급되는 것을 가끔 목격하곤 하는데, 퍼거슨은 흔히 우리가 말하는 의미에서의 공화주의자가 결코 아니다. 그는 당대의 일반적인 상식을 그대로 따라, 민주정이 "최악의 정부형태"라고 단언했다. 또 그는 공화정은 노예 노동에 입각한 고대의 농업사회에서나 가능한 것으로, 분업과 상업이 널리 침투한 근대사회에서 부유하고 인구가 많은 대국이 공화정을 도입할 경우 순식간에 중우정치의 늪에 빠져 군사정부가 들어서고 모든 자유는 소멸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것 또한 크게 보아 18세기 유럽 지식인들이 공유했던 "민주정은 군사정권으로 귀결된다"는 당대의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영국 헌정이나 고대 및 중세사에 대한 퍼거슨의 세세한 분석에 대한 소개는 생략)


퍼거슨이 내놓은 근대 상업사회용 맞춤형 대안은, 지금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시민군"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그는 "군사적 귀족(특권계급)"을 형성해서 "혈통의 귀족" 및 "부의 귀족"에 맞서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면 사람들이 혈통과 돈만 존경하고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핏줄로도 돈으로도 얻을 수 없는 또 다른 "능력주의"의 사다리를 갖게 될 것이라는 점, 그리고 이 군사귀족이 기존의 정치계급의 권력독점을 견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메모 : 데리다, <인간의 종말>

발췌 - 자크 데리다, '인간의 종말(Les fins de l’homme)'

佛文 145:1~147:0

이제 우리는 현상(phainesthai)의 사유를 목적(telos)의 사유에 연결하는 필연성을 이해하게 됐다. 동일한 통로를 통해 후설의 초월론적 현상학을 지배하는 목적론(téléologie)을 읽을 수 있다. 인간학주의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인류/인간성(humanité)”은 여전히 그것을 향해 초월론적 목적(telos)이 자신을 알리는 존재의 이름이다. 이 때 초월론적 목적(telos)은 칸트적 의미의 이념(Idée)으로, 또는 심지어 이성(Raison)으로 규정된다. 목적론적 이성의 전개, 다시 말해 역사가 전개될 장소를 지정하는 것은 가장 고전적인 형이상학적 의미의 이성적 동물로서의 인간이다. 헤겔에서와 마찬가지로 후설에서도 이성은 곧 역사며, 역사는 오직 이성의 역사만이 존재한다. 이성은 “모든 인간에서, 아무리 원시적인 인간이라 할지라도, 이성적 인간인 모든 인간에서 작동한다.” 모든 종류의 인류/인간성과 인간적 사회성은 “인간적 보편성의 본질적 요소에 뿌리를 두고 있다. 모든 역사성을 관통하며 가로지르는 목적론적 이성이 이 뿌리 안에서 자신을 알린다. 이와 함께 독자적인 문제제기(또는 일단의 문제들)가 나타나는데, 이것은 역사의 전체성과 관계하며, 최종적으로 역사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전체의미와 관계한다.” 초월론적 현상학은 인류/인간성을 가로지르는 이성의 목적론의 궁극적 실현이다. 따라서 후설이 필요할 때마다 현상학적 표지(indice)나 괄호(guillemets)로 영향을 미치면서 소생시키고 복원시킨, 형이상학의 토대가 되는 개념들의 권위 하에서, 경험론적 인간학주의에 대한 비판은 초월론적 인간주의를 단언하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후설의 추론에서 본질적 자원을 형성하는 이 형이상학 개념들 중에서, 종말(fin)과 목적(telos)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현상학의 모든 단계에서, 또 특히 “칸트적 의미의 이념”에 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