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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018의 게시물 표시

Daniel Bensaïd, <혁명들: 위대하고 정지해있고 침묵하는> 요약-번역

<혁명들: 위대하고 정지해있고 침묵하는> 요약-번역 다니엘 벵사이드 Daniel Bensaïd, " Revolutions: Great and Still and Silent ," in Mike Haynes & Jim Wolfreys (eds.), History and Revolution: Refuting Revisionism (London: Verso, 2007) < I > <노선( Lignes )>誌는 2001년 2월호에서 ‘혁명의 욕망’이라는 주제의 특집을 구성했다(참여 저자: Étienne Balibar, Jean Baudrillard, Daniel Bensaïd, Sylvain Lazarus, Michael Löwy, Edgar Morin, Jean-Luc Nancy, Enzo Traverso, Paul Virilio 등). 혁명의 욕망인가, 필요인가? 이는 생기 넘치는 욕망 같지만, 사실은 무덤의 헌화 같은 씁쓸한 향내를 풍기고 있다. 초창기의 추진력과 열정이 쇠진한 잔여물이 바로 욕망과 갈망이다. 필요로부터 해방된 욕망은 궁극적으로는 소비주의적 판본에 불과하다. 욕망 기제는 무엇보다도 소비 기제인 것이다. 필요를 욕망으로 대체하는 것은 이론적 역사를 갖고 있다. 레옹 왈라스는 노동가치론을 한계효용가치론으로 대체하면서 객관적 가치를 주관적 가치로 대체했고, 샤를 지드는 ‘욕망치(desirability: 얼마나 바랄만한가, 얼마나 바람직한가)’라는 용어를 도입함으로써 ‘효용(utility)’이라는 용어가 풍기는 객관성의 냄새를 제거했다. 푸코는 1970년대 말에 혁명이 아직도 바랄만한 것인지(still desirable) 질문함으로써 의식적으로건 무의식적으로건 이 전통을 이어받았다. < II > 얀 파토치카는 바로 혁명이라는 관념 자체에서 ‘근대성의 근본적 특징’을 본다. 샤토브리앙의 ‘혁명들’은 한나 아렌트에서 단수형 ‘혁명’이 되었는데, 이것은 시대의

제프 일리, <무엇이 민주주의를 만드는가? 20세기 유럽의 혁명적 위기들, 민중정치, 그리고 민주적 성취> 요약-번역

무엇이 민주주의를 만드는가? 20세기 유럽의 혁명적 위기들, 민중정치, 그리고 민주적 성취 (요약-번역) 제프 일리 Geoff Eley, “ What Produces Democracy? Revolutionary Crises, Popular Politics and Democratic Gains in 20th-Century Europe ,” in Mike Haynes & Jim Wolfreys (eds.), History and Revolution: Refuting Revisionism (London: Verso, 2007) <공산주의 이후에 민주주의 개념화하기> 1989년 일련의 동유럽 혁명과 1991년 소련 해체가 가져온 냉전의 종식은 불가역적이고 기념비적인 전진으로 여겨졌지만, 그 주된 의미를 민중참여와 민주주의의 관점보다 경제적 관점에서 평가하는 경향이 짙었다. 즉 시장이 이행의 주된 척도를 제공한 것이다. 1989년 이후 정치의 공적 언어에서는 허용되는 주장과 신념의 범위가 크게 좁혀졌다. 소련식 계획경제의 붕괴는 케인즈주의로부터의 황급한 후퇴와 탈규제 추세를 강화시켰고, 공공재에 대한 경시를 부추겼다.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을 상상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회주의에 대한 일체의 옹호를 배척하는 방향으로의 이행이 이루어졌다. 사회주의 진영의 현실적인 경제적 강령이 고갈된 상황에서, 자유시장에 기초한 자본주의적 경제모형은 확고한 주도권을 행사했고, 각종 조치와 협정을 통해 오늘날 세계화라 부르는 추세가 강화됐다. 현재의 담론에서는 민주화보다 시장이, 그리고 인간 행위자들의 집단적 작용보다는 시장세력의 승리가 변화의 원동력이자 진보에 필요한 역동성을 제공하는 힘이며 사태를 정당화하는 논변의 원천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시장의 힘은 각국 정부가 추구할 수 있는 정책의 범위에, 특히 예전 민주주의 기획의 케인즈주의적이고 복지국가적인 성향에 제약을 부과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마르크스주의는 힘을

헨리 헬러, <프랑스 부르주아지의 장기 지속> 요약-번역

프랑스 부르주아지의 장기 지속  (요약-번역) 헨리 헬러 Henry Heller , " The Longue Durée of the French Bourgeoisie ," Historical Materialism: Research in Critical Marxist Theory , 17:1 (2009), pp. 31-59. 원문: http://booksandjournals.brillonline.com/content/journals/10.1163/156920609x399209 이 글에 대한 반박과 재반박 등으로 구성된 논쟁 William Beik's response - http://booksandjournals.brillonline.com/content/journals/10.1163/156920610x512462 David Parker's response - http://booksandjournals.brillonline.com/content/journals/10.1163/156920610x512471 Henry Heller's response to William Beik and David Parker - http://booksandjournals.brillonline.com/content/journals/10.1163/156920610x512480 초록 :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은 엥겔스 이후로 프랑스 절대왕정을 귀족과 새로 출현한 자본주의적 부르주아지 사이의 중재자로 보았다. 좀 더 최근의 마르크스주의적 서술들은 절대왕정이 귀족의 이익을 반영했다고 강조한다. 수정주의적인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들은 이 시각을 극단적으로 이끌고 가서, 부르봉 왕조의 절정기였던 17세기에 자본주의적 부르주아지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역사가들은 그런 견해를 취함으로써 근대 초기에 지대세력과 이윤세력 사이에 변증법적 대립이 진행 중이었다는 것을 무시했고, 그 결과 구체제와 1789년 혁명을 단절시

Listening to a past conversation

"A text is a network of resistances, and a dialogue is a two-way affair; a good reader is also an attentive and patient listener [...] An interest in what does not fit a model and an openness to what one does not expect to hear from the past may even help to transform the very questions one poses to the past." This is a quote from Dominick LaCapra's article, "Rethinking Intellectual History and Reading Texts," History and Theory , 19:3 (1980), pp. 245-276. Between anachronistic presentism and antiquarian history "for its own sake," we should always look for the right balance, case by case, and there's nothing else we can do, in fact. So many scholarly articles on the "methodology" of intellectual history have been written only to argue this in the end, though by different paths and in different words. And this need for a "balance" is not only an imperative for intellectual historians but one for historians more generally. 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