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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는 분열로 망한다 vs 진보는 분열로 성공한다

진보는 분열로 망하는 게 아니라 분열을 통해 시대정신을 이끄는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은 헛소리라는 글을 누군가 보여줬다. 글쎄

이건 “망한다”는 말의 의미를 '뜻을 이루지 못한다'로 새긴 뒤,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문장을 비판한 셈인데, 이런 비판은 현대 정당정치에서 진보세력이 수행하는 일정한 역할에 대한 좋은 고찰을 담고 있다. 그렇지만 이 비판은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널리 퍼진 테제에 대한 직접적 비판으로는 유효하지 않다. 왜냐면 그 널리 퍼진 테제에서 “망한다”는 말이 뜻하는 것은 '집권에 실패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보는 분열하기 때문에 집권에 실패한다, 혹은 분열하기 때문에 집권해도 그 권력을 온전히 유지하지 못하고 그 권력을 이용해 실효적인 정책적 성과를 충분히 이루지 못한다는 뜻이다.

진보가 끝없이 자기분열하며 논쟁과 전파를 통해 '시대정신'을 끌어올린다는 말은, 그 자체로 유효한 견해이되, 시중에 널리 퍼진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잘못됐다는 주장의 근거로서는 부적절하다. 그것은 오히려 논의의 초점을 타협-집중-집권이라는 '전략'에 맞출 것이 아니라 분열을 통해 사회가 추구하는 이상과 원칙을 드높임으로써 '목표'를 교정하는 '전략'에 맞추자는 제안이다. 나로서는 둘 다 마땅히 필요하고 둘 다 마땅히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소거하거나 대체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 진보는 분열함으로써 '성공'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하는데, 이 때 진보가 분열하면서 이루는 목표는 똘똘 뭉침으로써만 이룰 수 있는 목표와 전략적으로 양립불가능한 지점이 있다. 아주 뛰어난 민주정치가 정착되어 있거나 또는 그 나라가 운이 좋아서 아주 뛰어난 지도자를 갖고 있지 않는 한.

왜 그런가? 누군가가 질적으로 수준을 높여둔 사회의 화두를 정책으로 탈바꿈시키려면, 그 화두를 둘러싸고 서로 충돌하는 입장들을 조율하고 결국은 어떤 결정을 내리고야 마는 권력이 있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이 이야기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철학적 아나키즘으로 가는 것이다. 권력을 잡으려면 함부로 너무 자꾸 분열해선 안 된다. 누군가가 분열하지 않고 권력을 쥐고 있으면서도, 그 권력을 사회의 진보적 화두를 정책화하는 데 적극적으로 사용해야만, 진보가 분열해서 망하지 않는다는 테제가 성립한다. 그러면 결국 분열하는 진보는 분열하지 않는, 즉 좀 덜 멋지고 좀 덜 피씨하고 타협에 좀 더 능하고 내부단속에 더 철저한 또 다른 집권세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분열하는 진보세력 자신은 집권하지 못했을 테니까. 그런데 집권세력이 사회의 진보적 화두들을 정책화하려면 집권세력이 매우 위대하고 훌륭하고 소박하고 민주적이면서 미덕으로 가득한 집단이거나, 그런 사람이 큰 힘을 갖고 이끄는 집단이거나, 아니면 정치가 매우 민주화되어 있어서 그 집단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뛰어난 민주정치가 정착된 나라는 현대 세계에 없다. 그나마 우리나라가 희망이 좀 있는데, 그렇다고 장기적으로 희망이 아주 큰 건 아니고...

...

(요즘 민주당 지지자들이 노무현의 죽음 이후 이른바 내부총질에 대해서 쉽사리 경기를 일으키는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민의의 심오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정책으로 만들어놓고 지나가야 할, 만장일치의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그 합의를 국가 차원에서 도출하고 결국 행정권력의 손으로 전국에 촘촘하게 뿌리내리게 만들어야만 할, 그런 화두들이 이미 많다. 화두를 더 급진화하는 것보다 더 급한 것은, 이미 정착된 화두들을 정책으로 만드는 것이다. 반드시 100을 가져야만 하고 60이나 70을 가질 바엔 당장은 아무 것도 갖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부류의 진보주의자들[모두가 그런 것은 아닐 테니]은 이런 말을 보면 그냥 수구세력의 푸념이나 비겁한 수정주의자의 자기변호라고 생각할 여지도 있다. Who cares? 뭐 그런 사람들도 있는 거지. 다만 나는 그런 사람들을 아름다운 이상주의자들, 지적 영웅들로 기리는 역사는 쓰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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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iel Bensaïd, <혁명들: 위대하고 정지해있고 침묵하는> 요약-번역

<혁명들: 위대하고 정지해있고 침묵하는> 요약-번역 다니엘 벵사이드
Daniel Bensaïd, "Revolutions: Great and Still and Silent," in Mike Haynes & Jim Wolfreys (eds.), History and Revolution: Refuting Revisionism (London: Verso, 2007)

< I >
<노선(Lignes)>誌는 2001년 2월호에서 ‘혁명의 욕망’이라는 주제의 특집을 구성했다(참여 저자: Étienne Balibar, Jean Baudrillard, Daniel Bensaïd, Sylvain Lazarus, Michael Löwy, Edgar Morin, Jean-Luc Nancy, Enzo Traverso, Paul Virilio 등). 혁명의 욕망인가, 필요인가? 이는 생기 넘치는 욕망 같지만, 사실은 무덤의 헌화 같은 씁쓸한 향내를 풍기고 있다. 초창기의 추진력과 열정이 쇠진한 잔여물이 바로 욕망과 갈망이다.

필요로부터 해방된 욕망은 궁극적으로는 소비주의적 판본에 불과하다. 욕망 기제는 무엇보다도 소비 기제인 것이다. 필요를 욕망으로 대체하는 것은 이론적 역사를 갖고 있다. 레옹 왈라스는 노동가치론을 한계효용가치론으로 대체하면서 객관적 가치를 주관적 가치로 대체했고, 샤를 지드는 ‘욕망치(desirability: 얼마나 바랄만한가, 얼마나 바람직한가)’라는 용어를 도입함으로써 ‘효용(utility)’이라는 용어가 풍기는 객관성의 냄새를 제거했다. 푸코는 1970년대 말에 혁명이 아직도 바랄만한 것인지(still desirable) 질문함으로써 의식적으로건 무의식적으로건 이 전통을 이어받았다.

< II >
얀 파토치카는 바로 혁명이라는 관념 자체에서 ‘근대성의 근본적 특징’을 본다. 샤토브리앙의 ‘혁명들’은 한나 아렌트에서 단수형 ‘혁명’이 되었는데, 이것은 시대의 새로운 의미론에 각인되었다. 즉 이제 과거…

제프 일리, <무엇이 민주주의를 만드는가? 20세기 유럽의 혁명적 위기들, 민중정치, 그리고 민주적 성취> 요약-번역

무엇이 민주주의를 만드는가? 20세기 유럽의 혁명적 위기들, 민중정치, 그리고 민주적 성취 (요약-번역)제프 일리
Geoff Eley, “What Produces Democracy? Revolutionary Crises, Popular Politics and Democratic Gains in 20th-Century Europe,” in Mike Haynes & Jim Wolfreys (eds.), History and Revolution: Refuting Revisionism (London: Verso, 2007)


<공산주의 이후에 민주주의 개념화하기>

1989년 일련의 동유럽 혁명과 1991년 소련 해체가 가져온 냉전의 종식은 불가역적이고 기념비적인 전진으로 여겨졌지만, 그 주된 의미를 민중참여와 민주주의의 관점보다 경제적 관점에서 평가하는 경향이 짙었다. 즉 시장이 이행의 주된 척도를 제공한 것이다.

1989년 이후 정치의 공적 언어에서는 허용되는 주장과 신념의 범위가 크게 좁혀졌다. 소련식 계획경제의 붕괴는 케인즈주의로부터의 황급한 후퇴와 탈규제 추세를 강화시켰고, 공공재에 대한 경시를 부추겼다.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을 상상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회주의에 대한 일체의 옹호를 배척하는 방향으로의 이행이 이루어졌다. 사회주의 진영의 현실적인 경제적 강령이 고갈된 상황에서, 자유시장에 기초한 자본주의적 경제모형은 확고한 주도권을 행사했고, 각종 조치와 협정을 통해 오늘날 세계화라 부르는 추세가 강화됐다.

현재의 담론에서는 민주화보다 시장이, 그리고 인간 행위자들의 집단적 작용보다는 시장세력의 승리가 변화의 원동력이자 진보에 필요한 역동성을 제공하는 힘이며 사태를 정당화하는 논변의 원천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시장의 힘은 각국 정부가 추구할 수 있는 정책의 범위에, 특히 예전 민주주의 기획의 케인즈주의적이고 복지국가적인 성향에 제약을 부과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마르크스주의는 힘을 크게 상실했지만, 한편 시장원칙의 거의 …

프랑스혁명이 부르주아혁명이었는가를 둘러싼 20세기의 역사학계 논쟁에 대한 필립 미나르(Philippe Minard)의 논평

프랑스혁명부르주아혁명이 아니었는가? - 역사서술의 유산 -

라브루스(Ernest Labrousse)는 1953년 글에서 혁명이 일어나기 두 세대 전부터 부르주아의 대두가 다시 시작됐는데, 수가 증가하고 더욱 큰 부와 능력을 갖게 되었지만 성실하고 근검절약하고 가족을 아끼는 탄탄한 덕성은 전혀 잃지 않았다고 썼다. 두 가지 문제가 제기됐는데, 하나는 ‘권력 재분배’였고 다른 하나는 ‘경제 자유화’였다. “더 부유해지고 수도 늘어나고 더욱 훌륭하게 교육받은 데다 도시에 모여 살며 밀접하게 접촉했던 부르주아가, 가장 대의제적이었던 환경에서, 어떻게 계급으로서의 자의식을 갖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이 자의식은 귀족과 투쟁하면서 더 확고해졌다. 그러나 부르주아의 장애물은 커져만 갔으니......” 그래서 라브루스는 최종적으로 1788년의 부르주아는 사회적으로 억압된 계급이라고 진단했다.

이와 같은 해석 도식은 1930년대 르페브르(Georges Lefebvre)나 1965~66년의 (‘젊은’) 퓌레와 리셰(F. Furet & D. Richet)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다. 한마디로 프랑스대혁명은 나눌 수 없는 쌍으로 인식되는 ‘부르주아의 대두’와 ‘자본주의의 출현’의 거대서사에 오래전부터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그 후 1970~80년대에 격론이 일었는데, ‘사회사’는 이로부터 얻은 것이 전혀 없다.

소위 ‘마르크스주의적’ 또는 심지어 ‘자코뱅주의적’이라고 불리는 ‘정통해석’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혁명이 부르주아지에 의해 일어났고 부르주아지를 위해 운용됐다는 관념은 혁명이 일어난 직후부터 바르나브(Barnave)에게서 발견되며, 이후 토크빌, 미녜, 기조, 티에리, 텐에까지 이어졌다. 마르크스도 ‘구체제의 폐허 위에 건설된 부르주아적ㆍ자본주의적 프랑스’라는 관념을 왕정복고시대의 자유주의 역사가들에게서 가져왔다. 만일 ‘정통해석’이란 게 있었다고 한다면, 거기에는 많은 역사가들이 참여하고 있었다. 이는 모라제(Charles Morazé)의 1957년 글과 퐁테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