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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혁명과 역사의 진동 : 촛불과 박근혜

시인 워즈워스는 1789년 프랑스혁명을 두고 "이 순간 살아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그리고 이 날 젊은이로 살아있다는 것은 천국과도 같은 것이다!" 라고 외쳤다. 그리고 프랑스혁명이 공포정치와 제국주의 전쟁으로 바뀌어가는 것을 보며 좌절하고 철저한 반동적 보수주의자로 변신했다. 그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낭만주의자들이 프랑스혁명의 "실패"를 보고 좌절했고 정치에서 마음을 거두었다.

그리고 몇십년 뒤 정치가 되살아났다. 바이런은 그리스의 독립을 외치며 죽었고 파리의 학생, 노동자, 부르주아는 단결하여 바리케이드를 치고 싸웠고, 목숨을 던져 부르봉 왕가를 무너뜨렸다. 이탈리아에서는 젊은 개혁가들이 통일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당시로서는 불법적인 운동을 개시했다.


그리고 1830년, 프랑스에 7월 왕정이 들어섰다. 권력을 잡은 부르주아지는 혁명 동지였던 학생들과 노동자들을 가차 없이 탄압했고, 유럽에서 가장 안정적인 부르주아 정권을 수립했다. 이 정권은 1848년 다시 한 번 혁명을 겪을 때까지 18년을 갈 것이었다. 부르봉 왕가를 지지하는 이른바 "정통 왕당파" 세력은 몰락한 듯 보였으나 3년만에 부활하여 의회에서 정치적 세력을 회복하고 활개쳤다. 사람들이 이들에게 표를 주는 것을 보고 또 수많은 개혁적 낭만주의자들은 좌절하고 정치를 혐오하고 보수주의자가 되었다.

1848년 2월 혁명은 부르주아 왕정을 무너뜨렸으되 부르주아 공화국을 수립했다. 6월의 노동자 혁명은 피비린내나는 진압을 거쳐 스러져갔고, 나폴레옹의 조카 루이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쿠데타를 일으켰고, 황제가 되었으며, 자유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정책을 혼합 시행했으나 멍청한 판단으로 전쟁을 일으키자마자 프로이센 군에 포로로 잡혔다. 곧 공화국이 선포되었다. 그러나 이 공화국은 파리 코뮌을 가차 없이 학살했고 민주주의를 용납하지 않는 체제였다.

낭만주의자들은 19세기 내내 혁명으로 죽어간 사람들의 피가 헛되이 부르주아 지배의 권위주의 질서를 강화시켜주기만 하는 것을 보며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희망과 좌절을 반복해서 건네주었다. 그러나 18세기 말과 19세기 말의 세계는 확연하게 달랐다. 농민들도 바뀌었다. 제3공화정은 1940년에 독일에게 점령당해 멸망할 때까지 70년을 버텼다. 프랑스에서 더 이상 부르봉 왕가의 정통주의나 나폴레옹의 적통을 주장하는 보나파르티슴(bonapartisme)은 현실적인 대안으로서 발 붙일 수 없게 되었다.

노무현이 부산에서 여러 차례 선거에 패배하고 자신을 도왔던 캠프의 동지들에게 하던 말이 있다. "시간이 약입니다. 시간이 필요합니다. 마음 속의 상처가 아무는 데에도, 세상이 바뀌는 데에도, 시간이 걸립니다."

혹시 촛불의 감격이 2017년을 넘기지 못하고 사람들이 환멸에 빠지는 일이 전적으로든 부분적으로든 일어난다 할지라도, 촛불의 경험은 중요하다. 우리 정치는 사회주의도, 민주주의도, 공화주의도, 자유주의도 아니다. 아직 엉망이고, 그것은 우리의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인 면도 있다. 그러나 이제 박근혜 김기춘 최순실 우병우의 세상이 한동안은 다시 올 수 없다. 우리가 총칼을 들지 않고도 그들을 끌어내린 소중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진짜 중요한 것은, 역사의 도도한 흐름에서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모든 국민적 역량을 집중시켜야 하는 과업은 아마도 박근혜와 그 잔당의 확실한 퇴출일 것이다. "주류를 바꾸는 것, 다시 말해 이제 우리가 사회의 주류가 되는 것"이 필요하다. 친박을 폐족으로 만드는 것, 이번 일에 연루된 부패한 자들을 색출해서 확실하게 사회의 비주류로 만드는 것, 이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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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과 자본주의 : 케빈 카터의 사진 <독수리와 어린 소녀 (1993)>에 부쳐

유명한 필자들의 글을 읽다보면 비판으로 시작해 비판으로 끝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큰 그림을 이야기하는 경우일수록 그러하다. 대안 없는 비판도 유의미하지만, 그 사람이 쓴 글이 모조리 그러하다면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 대안에 대한 모색과 비판의 정교화는 변증법적으로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나는 비판만 할테니 대안은 너희가 찾으렴" 같은 태도는 안 된다.
1. <전 세계에서 동시에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동시다발적, 전지구적 사회주의 혁명은 불가능하다. 이건 논증의 대상이 아니다. 이건 신앙의 영역이고, 내 판단(신앙)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세계의 지배구조는 1%가 아닌 10% 이상이 지지하고 떠받치기 때문에 그들의 군사력, 경제력, 그리고 정신적 헤게모니를 동시다발적으로 파괴할 수 있는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핵전쟁이라도 나지 않는 한... 만일 지구상 인간 절반 이상이 죽는 대재앙 없이도 전지구적 사회주의 혁명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아래 2 이하의 글은 글로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그에게는 이것이 "부르주아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오염된" 것으로만 보일 것이다. 그건 어쩔 수 없다. 일단 내 생각의 흐름을 정리해본다.
2. <현 자본주의 사회에 숨어 있는 비참함과 불평등은 정당화될 수 없다>
지금 국제사회가 미디어로부터 최대한 숨겨두는 불평등과 가난의 처참한 현실은, 한 번뿐인 삶을 고통스럽게 살다 죽는 사람들을 둘러싼 종이사다리의 벽은, 여하한 경제이론으로 정당화할 수 없다. 도덕의 영역이고 인류의 실존적 고민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정의"의 문제로 치환되든 역사적 유물론의 이론으로 포섭되든 마찬가지다. 정당화될 수 없는 불의가 만연해 있다. 그리고 숨겨져 있다. 사회주의자들의 이론적 비판 지점에도 생각해볼 만한 점이 많다. 왜 20달러짜리 옷은 생산지인 방글라데시에 1달러만이 돌아가고 19달러가 선진국 내…

무엇을 위하여 혁명을 하는가? 시민의 권력에 토대를 둔 공화국을 발명할 수 있는가?

혁명은 시간의 경첩이다. 프랑스혁명은 하나의 ‘사건’으로서, 선형적인 시간 흐름을 끊고, 시계열 자체를 조작하려고 시도했다―“새로운 역법을 만든 것”. 시간은 탈구되었다. 순환(révolution)이었던 것은 더 이상 되돌아오지 않는 역전(révolution)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적실한 개연성 및 상호 관계―“모든 혁명은 독립 전쟁이다”― 속에서 나타나며, 완전히 우발적이지도 완전히 필연적이지도 않다. 공화국은 어디까지나 역사 속에서 발명된 것이며, 그 역사는 하나의 서사로 환원되지 않는다―“혁명은 모든 가능성들의 합계 속에 세워진다”. 정치는 이미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이며, 여러 정치들 사이의 분열 및 불화를 내재화하려는 몸짓들 속에서 형성된다.


이러한 불화, 즉 상상과 현실의 첨예한 화학 작용은 모든 가능성들의 끄트머리에서 가장 절실하게 나타난다. 가장자리, 식민지―“혁명은 끝없이, 가장자리에서, 다시…”. 이 첨단을 시야에 넣지 않고서는 누구도 보편에 대해 말할 권리를 가지지 못한다.진정한 보편성은 가장 소외된 장소, 가장 예외적인 장소에서도 확인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보편성은 완전한 차이를 경유한 완전한 차별을 산출할 뿐이다―“인종적 불평등이 법적 불평등을 대체했다”. 투생 루베르튀르가 총을 쥐고서 했던 말은 미처 이루어지지 않을, 영원히 기다려질 보편성의 다소 불길한 전조를 이룬다―“보라, 이것이 우리의 자유다”.


여기서 자유와 총의 등치는 ‘혁명은 곧 폭력’이라는 진부한 공식처럼 보인다. 혁명은 종종 악마화되지만 그 자체로 폭력적인 혁명은 없다―“‘민주주의의 병리학’ … ‘공포정치’가 만약 그런 것이라면, 그것은 아예 존재했던 적조차 없다”. 구태여 말하자면 혁명을 위한 폭력만이 있다. 혁명은 시민을 발명했고, 시민 권력을 토대 삼아 공화국을 발명했다. 그리고 바로 이 공화국의 법은 폭력을 최대한 주변화했다―“자유 국가에서 군부 권력은 가장 제약받아야 한다”. 폭력을 수반한 혁명의 억압은 폭력성의 현현이기보다…

루소의 <사회계약론>에 대한 스미스의 한 마디

포자드생퐁(Barthélemy Faujas de Saint-Fond)이라는 프랑스 광물학자(암석학자?)가 1797년에 2권짜리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헤브리디스 제도 여행기(Voyage en Angleterre, en Ecosse et aux îles Hébrides, ayant pour objet les sciences, les arts, l'histoire naturelle et les moeurs)>를 출판했다.


책 표지에 "뉴캐슬, 더비셔, 에든버러, 글래스고, 퍼스, 세인트앤드루스 등"의 암석과 광물에 대한 묘사를 담고 있다고 광고하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희한한 책이지만 온갖 과학에 대한 당시 독자층의 높은 관심도를 보여주는 부제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포자드생퐁이 이 책에 쓴 바에 따르면, 그는 애덤 스미스(Adam Smith)를 만나서 루소(Jean-Jacques Rousseau)에 대한 대화를 나눴는데, 스미스가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 <사회계약론(Du contrat social)>은 그 저자[루소]가 당한 숱한 박해를 모두 갚고도 남을 것입니다."

밑거나 말거나다. 그랬단다.